1010년, 고려 현종이 즉위한 직후 거란(요나라)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이는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삼은 것이었지만, 실제 목적은 고려와 송나라의 교류를 차단하고 강동 6주를 되찾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왕위 교체와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거란의 침입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양규의 활약
거란군은 흥화진을 공격했으나, 성주 양규의 완강한 항전으로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양규는 소수의 병력으로 대규모 거란군을 막아내며 고려의 저항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거란군이 개경까지 진입했을 때도 양규는 끝까지 항전하며 서북 지역 방어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고려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고려의 대응
거란군은 개경을 점령했지만 병참선을 확보하지 못한 채 빠르게 남하했습니다. 이로 인해 보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려 조정에서는 일시적으로 항복론이 제기되었으나, 강감찬 등의 반대와 양규의 항전 덕분에 끝내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2025.11.12 - [분류 전체보기] - 기미상궁 뜻
기미상궁 뜻
기미상궁은 단순히 왕의 음식을 맛보는 역할을 넘어, 왕의 생명을 지키고 궁중 권력의 핵심에 자리한 여성 관리였습니다. 음식의 안전을 책임지며 왕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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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의 최후
양규는 끝까지 거란군과 싸우다 1011년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고려인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지만, 동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거란의 2차 침입은 고려 역사에서 가장 위태로운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양규의 헌신적인 항전과 고려 백성들의 저항은 나라를 지켜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양규는 단순한 성주가 아니라, 고려를 지켜낸 영웅으로 역사에 길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고려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